2013년 7월 24일 수요일

경영학제록스 사의 벤치마킹

경영학제록스 사의 벤치마킹
[경영학]제록스 사의 벤치마킹.hwp


목차
품질의 전관왕(全冠王) 제록스

아스토리아 10-22-38의 탄생

새로운 사업 아이템의 모색

IBM의 뒤늦은 후회

모든 것을 바꾸어 놓은 외로운 선택

대중광고의 기술

게임의 새로운 규칙을 만들어 내다

기술혁신에도 불구하고 시련은 시작

제록스 잇이 리카피 잇으로

신(新)제록스 운동에서 배우다

품질을 통한 리더십의 착수

계단폭포형 교육훈련

품질상에 도전하는 이유

강자들의 무대로 좁혀진 글로벌 마켓




본문

새로운 사업 아이템의 모색
제록스사의 전신은 할로이드(Haloid)라는 소규모 인화지 제조업체였다. 1906년에 설립된 이 회사는 2차 세계대전 중 군대가 정찰사진을 사용하면서 급속히 성장하였다. 그러나 전쟁이 끝나면서 인화지 수요가 줄어들기 시작하였으며, 축소된 시장에서 할로이드 사는 치열한 생존경쟁을 벌여야만 하였다. 1945년 창업자의 손자인 조셉 윌슨(Joseph Wilson)이 이 회사의 사장으로 승진했다. 명문 로체스터 대학과 하버드 경영대학원을 졸업한 윌슨은 할로이드와 같은 자그마한 회사에 근무할 마음이 별로 없었으나, 당시 사장으로 있던 그의 아버지가 규모가 작기 때문에 도전해 볼 많은 일과 상당한 잠재력이 있다고 그를 설득했었다. 윌슨은 회사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무언가 새로운 아이템을 찾아야 한다고 판단했다. "우리가 전적으로 인화지에만 매달려서는 안된다. 뭔가 새로운 신제품을 시장에 내놓아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새로운 종류의 인화지나 지진기록용 제품이 신규 사업종목의 물망에 올랐으나, 그 어떤 것도 선뜻 할로이드의 위기를 타개할 만한 잠재력을 갖춘 것으로 생각되지 않았다. 이 회사의 연구개발 부서장이던 존 데소어는 유망한 신제품을 물색하기 위해 수백 권의 기술관련 잡지들을 물색하던 중, 코닥사의 Monthly Abstract Bulletin 에서 바텔 연구소가 연구 중이던 칼슨의 전기사진술에 관한 논문요약본을 발견하였다. 그것은 아직 기초단계에 불과하였지만, 윌슨은 매우 큰 잠재력이 있다고 생각하였다. 1946년 할로이드는 바텔 연구소에 매년 2만 5천 달러의 연구비를 지급하고, 또한 장차 전기사진술로 인해 생기는 수입의 8%를 내 놓겠다는 조건으로 칼슨의 기술을 개발할 수 있는 권리를 사들였다.
할로이드 사는 바텔 연구소에 칼슨의 전기사진(electrophotography)이라는 용어 대신 새로운 이름을 만들자고 제안하였다. 전기사진이라는 말이 특별히 새롭거나 관심을 유발시키는 것으로 생각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1948년에 오하이오 주립대학의 고전언어 전공 교수들에게 자문한 결과 그리이스어의 두 단어인 xeros(건조한)와 graphein(문서)을 합하여, 건식문서라는 뜻의 제로그래피(xeropraphy)라는 용어를 생각해 내었다.

IBM의 뒤늦은 후회

1947년부터 1960년 사이에 할로이드 사는 제로그래피 연구에 7,500만 달러를 쏟아 부었다. 이것은 이 회사 영업수익의 2배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연구개발비를 마련하기 위해 간부들의 집까지도 모두 저당 잡혔다. 사활을 건 10여년의 연구결과 오늘날과 같은 건식 복사기인 914모델을 개발할 수 있었다. 914라는 숫자는 가로, 세로 길이가 각각 9인치, 14인치까지 복사할 수 있다는 뜻으로 붙여진 것이었다. 914모델이 시장에서 실패한다면 할로이드 사와 그에 투자한 많은 사람들이 모두 파산하기 때문에, 윌슨은 위험성을 줄이기 위해 생산에 앞서 IBM에 합작투자를 제의하였다. IBM은 이름있는 경영자문회사인 아더디리틀(ADL)에다가 할로이드 사가 개발한 건식 복사기 시장의 전망에 대한 자문을 의뢰하였다. ADL은 일부 사무실에서 복사기가 중요하다는 것은 인정하였으나, 그 수요가 기껏해야 월 5천대 정도 밖에 되지 않을 것으로 예측하였다. 또한 914 복사기의 큰 부피와 높은 가격이


본문내용
였다. 조그마한 가족회사로 출발한 제록스의 성공과 좌절, 그리고 재기에 이르기까지 90여년의 역사가 주는 교훈은 무엇일까?
아스토리아 10-22-38의 탄생
복사기 없는 회사, 관공서, 학교 등을 상상해 보라. 복사기는 인류 역사에 있어서 수레의 발명에 버금가는 혁명적인 것이라는 평가가 과장이 아니라는 것을 수긍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은 웬만한 사무실이라면 복사기가 구비되어 있지만, 30년 전만 하더라도 사정은 전혀 달랐다. 관공서나 학교, 사무실 등에서는 서류 밑에 깔고 쓰는 시커먼 먹지나 잉크를 묻힌 롤러를 밀어서 쓰는 등사기가 복사할 수 있는 수단의 전부였다. 복사할 작업량이 많은 곳에서는 필경사(筆耕士)나 별도의 등사만을 전담하는 직원을 따로 두었다. 그러나 복사기의 등장으로 이러한 풍경은 역사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