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국적기업론 닛산 르노 해외 진출 성공요인 분석
[다국적기업론] 닛산 르노 해외 진출 성공요인 분석.hw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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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서론 - Renault-Nissan 기업소개
본론 본론1 - 외부환경 분석 본론2 - 90년대 Nissan의 위기와 원인 본론3 - Nissan의 위기극복 본론4 - Renault-Nissan의 전략적 제휴
결론 - Renault-Nissan의 미래
본문 ● 기술력과 마케팅의 분리 ▶ “뛰어난 기술력”의 허상 닛산의 기술력은 도요타를 오히려 능가하는 것으로 자타가 인정한다. 닛산-르노의 제휴발표 며칠 전 일본 운수성이 공표한 자동차 안전평가에서도 닛산은 압도적으로 좋은 점수를 받았다. 닛산은 4개 차종의 브레이크 성능이 최고등급인 AAA였던 반면 도요타는 모두 세번째 등급인 A에 불과했다. 그래서 기술의 닛산으로 불린다. 하지만 닛산 자동차는 성능이 좋을지는 몰라도 소비자가 원하는 제품은 아니었다. 이미 당시 자동차 업계는 타사와의 기술격차가 현저하게 줄어들고 있는 가운데 고전적이면서 비싼 자동차 만들기만을 고집하는 NISSAN을 시장과 고객이 외면한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이에 비해, 도요타는 판매점에서 올라오는 생생한 고객 정보를 신상품 개발에 적극적으로 반영하여 󰡐팔리는 차동차󰡑만들기에 성공하여 대조를 이뤘다. ▶ 소비자 대응력 미비 닛산은 전통적으로 생산-개발 부문 기술자의 발언권이 지나치게 강했다. 제품개발 초기단계에 마케팅 담당자가 참여한 것도 불과 2년 전부터의 일이었다. 그 전까지는 기술자들이 감을 갖고 자동차를 만들었다. 90년대 초 RV (레저용자동차) 붐이 불었는데도 닛산은 한동안 팔짱만 끼고 있었다. 뒤늦게 RV시장에 뛰어들었지만 다른 메이커가 이미 시장을 선점한 뒤였다. 즉 RV가 선풍적인 인기를 누릴 것으로 예측하고도 개발시기를 늦추는 등 적절히 대응하지 못했다. ● 수익성의 하락 ▶ 채산성 악화 안 팔리는 물건을 팔려고 가격인하에 나서고 이로 인해 채산성이 나빠지는 악순환이 이어졌다. 닛산의 형편없는 체력은 수치로 확인된다. 도요타나 혼다, GM 등은 자동차 1대를 팔면 15만~20만엔의 이익을 낸다. 하지만 닛산은 1대당 이익이 5만엔에 불과하다. 버블 호황기에는 그래도 버텨나갈 수 있었지만 90년 장기불황은 닛산을 헤어나기 힘든 지경에 몰아넣었다. 88년 사회적 현상으로 번질 정도의 대대적 붐을 일으킨 고급차 시마의 히트는 닛산으로 하여금 마지막 오류를 저지르게 만들었다. 시마로 재미를 본 닛산은 한 대당 700만 엔이 넘는 인피니티브 등을 내놓으며 고급차 드라이브에 승부를 걸었지만, 90년대초 버블붕괴는 닛산의 전략을 완전히 빗나가게 만들었다. 견디다 못한 닛산은 93년 일본경제 부흥사의 상징이라던 명문 자마 (좌간)공장 폐쇄를 결정했다. 그 이후는 예정된 몰락의 수순을 밟아갔을 뿐이었다. 5년간 적자를 냈으며, 부채는매출액의 70%에 달하는 2조5000 억엔으로 부풀었다.
▶ 일본시장 점유율 하락 도요타의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고, 3위인 혼다에도 위협받는 처지가 됐다. 닛산자동차의 일본 내 시장점유율은 1974년 34%를 정점으로 1999년에는 19%까지 하락하였다. 도요타의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고, 3위인 혼다에도 위협받는 처지가 됐다. 닛산자동차의 일본 내 시장점유율은 1974년 34%를 정점으로 1999년에는 19%까지 하락하였다. 또한 해외 시장점유율은 1991년도 6.6%에서 1999년에 4.9%까지 하락하였다. 1998년 회계연도 영업이익은 1,097억 엔의 흑자를 보였으나 영업이익으로 이자비용을 감당하기도 어려웠다. 그리고 과거 회사일보다 업계의 조정역할로 더 바쁘다던 닛산 경영진은 그제서야 경영재건의 시동을 걸었지만 자체회생은 이미 물 건너간 뒤였다. 열렬한 러브콜을 보냈던 다임러 크라이슬러에 거부당하는 수모를 겪은 끝에, 닛산은 겨우 르노와 손잡아 파산 위를 모면했다.
본문내용 Renault-Nissan의 전략적 제휴 결론 - Renault-Nissan의 미래 서론 : Renault-Nissan 기업소개 ■ Nissan 소개 1 2차 세계대전 이전 「Pre-war years」 1933년 12월 26일, 지도샤-세이조 카부시키-카이샤(자동차제조주식회사)를 설립 토바타 주형 주식회사의 자동차 부서로부터 DATSUN의 생산 운영권을 인수 1934년 6월 1일, 닛산 자동차 주식회사로 변경 1935년 4월, 닛산 최초의 소형 승용차인 닷산을 요코하마 공장에서 생산, 같은 해에 닷산을 호주에 수출 닷산모델(DATSUN)은 당시 근대공업에서의 빠른 성장을 나타내주는 상징 당시 슬로건은 “일장기의 떠오르는 태양과 닷선의 선택” 1936년, 美 승용차, 트럭 생산회사인 그래햄-Pai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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