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포항제철의 역사는 1968년에 시작되었다. 그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철강 산업의 진출을 검토하고 그 사업과제를 당시 대한중석의 사장이었던 박태준 사장에게 맡겼다. 박태준 사장은 사업계획서를 갖고 세계은행과 미국의 철강 기업을 찾아가 자본과 기술을 제공해 줄 것을 요청하였으나, 번번이 거절당하고 말았다. 박태준 사장은 마지막 수단으로 자신의 일본 와세다대학 유학 시절의 절친한 친구들을 통해 대일청구권 자금을 확보하고 일본의 철강기업으로부터 기술이전을 약속받았다. 1973년 연간 백만 톤 규모의 제1고로를 가동한 것에 이어, 1976, 1978, 1983년에 각각 제2, 제3, 제4고로를 준공하여 연간 910만 톤의 생산시설을 갖추었다. 그 후 1985년부터 광양만에 신규 투자를 시작하여 1992년에는 연간 1,140만 톤 규모의 광양제철소를 완공하였다. 포항제철은 현재 세계에서 가장 가격경쟁력이 높은 철강회사이다. 표와 같이 포항제철의 냉열제품의 제조원가는 주요 경쟁국인 일본과 대만에 비해 월등히 낮다. 총 제조원가 중 감가상각비는 높지만, 재료비, 노무비가 낮은 편이다. 노무비가 낮은 이유는 국내임금수준이 낮은 까닭이고, 재료비가 싼 이유는 철광석의 도입가격은 비슷하나 국내에서 조달되는 부자재비, 외주가공비가 싸기 때문이다. 특히 제철소의 건설단가는 가격경쟁력을 뒷받침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제철소 건설에는 막대한 자금이 소요되는데 건설단계에서 건설단가가 너무 높으면 제아무리 효율적으로 경영을 한다 할 지라도 경쟁력을 확보하기 어렵다. 포항제철의 경우, 1기에서 4기까지 조강 1톤당 평균건설단가가 422달러였던 것에 비해, 1979년에 준공된 일본의 오기세마 제철소는 626달러. 1982년에 준공된 대만의 esc 2기의 건설단가는 857달러나 되어, 한국 포항제철의 가격경쟁력의 주요 원천이 저렴한 건설단가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표에서 포항제철의 감가상각비가 높은 이 유는 빠른 투자자금 회수를 위해 특별감가상각을 실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본문내용 997년 외환위기를 맞아 한국의 유수한 재벌기업들이 도산하고 한국정부가 발행하는 국채(國慣)가 정크본드수준에서 거래 되는 와중에서도 포항제철이 발행한 채권은 최고의 신용등급으로 거래되는 등 세계적으로 그 성과를 인정받고 있다. 세계적인 경영컨설팅 회사인 맥킨지는 한국의 여러 기업과 산업을 연구한 후, 한국기업 중 세계적인 초우량 기업과 어깨를 견줄 기업은 포항제철뿐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포스코는 1998년 이후 일본의 新日本製鐵을 제치고 세계에서 가장 큰 철강생산기업이 되었다. 포항제철의 용광로는 2000년 한 해만도 2천 8백만 톤 이상의 조강을 생산하였고, 2004년이후 3천만톤이상의 조강을 생산하고 있으며, 매출의 24% 가량을 해외시장에 공급하고 있다. 포항제철의 주식은 서울뿐만 아니라 런던과 뉴욕에
참고문헌 Steel-N.com world steel dynamics posco.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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